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샤킬 오닐 (문단 편집)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youtube(G49Br277-Mg)] [youtube(53woXWFsiHA)] [[파일:attachment/Lakers_Shaq.jpg|width=400]]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시절 초기에는 [[유타 재즈]]의 [[칼 말론]]&[[존 스탁턴]] 듀오[* 1997년 플레이오프에서 유타 재즈에게 4-1로 패한 다음 1998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스윕'''까지 당하자 분을 이기지 못한 오닐은 화장실 거울을 깨부수고 문짝까지 뜯어내며 난리를 치자 [[제리 웨스트]] 단장이 그걸 보고는 "이게 무슨 짓이냐. 나는 파이널 진출을 '''8번이나 한 끝에''' 겨우 첫 우승을 했다"라는 말을 했고 이에 놀란 오닐은 "8번이요?"라고 반문한 뒤 데꿀멍했다고 한다. ([[2016 NBA 파이널]] 2차전을 앞두고 NBA TV에서 제리 웨스트를 인터뷰했는데 이 때 옆에서 오닐이 밝힌 이야기다)]나 [[팀 던컨]]을 얻은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밀렸으나 명장 [[필 잭슨]]의 지도 및 [[코비 브라이언트]]가 정상급 슈팅 가드로 성장하며 오닐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하킴 올라주원]] 등이 내리막길을 걷는 반면 경험이 쌓이고 몸을 불린 오닐이 리그의 지배자가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9-00 시즌은 오닐의 선수생활 중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67승 15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뒤 득점왕, 올스타전 MVP 그리고 MVP를 모두 차지했는데[* 이 과정에서 '''61득점 23리바운드'''로 [[윌트 체임벌린]] 이후 최초로 60-20을 달성하는 경이로운 경기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MVP 투표 121표 중 120표를 싹쓸이'''[* 기자 1명이 [[앨런 아이버슨]]에게 투표했다. 훌륭한 팀원들 없이 혼자의 힘으로 팀을 이끈 공로를 높이 샀다는 것이 그 이유.--[[디켐베 무톰보]]:...?-- 훗날 2012-13 시즌 MVP 투표에서도 1표가 [[카멜로 앤서니]]에게 가는 바람에 [[르브론 제임스]]가 만장일치로 MVP에 선정되는데 실패한 일이 있었다. 이후 이 전인미답의 고지는 2015-16 시즌 [[스테판 커리]]가 달성한다.]하는 위엄을 선보였다. 이어 플레이오프에서는 새크라멘토, 피닉스, 포틀랜드를 차례로 꺾은 뒤 노장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와의 [[2000 NBA 파이널]]에서 평균 38.0득점 16.7리바운드 필드골 성공률 61%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시리즈 스코어 4-2를 만들며 첫 번째 [[우승반지]]를 손에 넣고 파이널 MVP까지 수상하면서 시즌을 완벽하게 마쳤다. 2001년 플레이오프에서는 포틀랜드, 새크라멘토, 샌안토니오를 모조리 스윕해버리는 위엄을 과시했다. 이후 열린 [[2001 NBA 파이널]]에서는 필라델피아의 [[앨런 아이버슨]]이 투혼을 불태우며 첫 경기에서 패배를 안겨줬지만 오닐과 코비는 이후 무자비하게 4연승을 거두며 두 번째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다.[* 1차전 44득점을 넣고도 졌으나 2차전에서 거의 '''쿼드러플 더블(28득점 20리바운드 9어시스트 8블록)'''을 달성할 뻔하기도 했다.] 이듬해 2002년 플레이오프에서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던 새크라멘토 킹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다시 파이널에 진출한다.[* 나중에 승부조작 스캔들로 구속된 팀 도너히 심판은 이 시리즈 6차전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발언을 하는데, 실제로 석연찮은 판정들 때문에 말이 많았다.] [[제이슨 키드]]가 이끌던 [[브루클린 네츠|뉴저지 네츠]]의 양민 골밑부대는 오닐 앞에서 맥없이 허물어지며 3연패에 성공했다. 2000년대 초 오닐은 말그대로 대마왕이었다. 그래서 오로지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티팬들을 무수하게 양산한 시기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기에 NBA 시청을 끊었다는 반응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였다.[* 마이클 조던은 1990년대에 쓰리핏 두 번에 6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시대의 지배자였음에도 이런 반응까지는 나오지 않았는데, 우아하고 멋진 플레이로 타팀 팬들에게도 일종의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던 조던과 달리 오닐의 플레이 스타일은 압도적인 피지컬로 상대팀들의 골밑을 깡그리 때려부수는 식이었기에 타팀 팬들에게 더욱 밉보인 감이 컸다.][* 사실 레이커스 시절 오닐은 대중적인 인기가 마이클 조던이나 동시대 코비 브라이언트, 후대의 르브론 제임스처럼 폭발적으로 많은 선수는 아니었다. 농구특성상 화려한 기술로 상대를 따돌리는 저런 선수들보다 우직하게 골밑으로 밀고 들어가는 정통 빅맨들은 인기가 비교적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느린 속도로 속공 참여가 적은 오닐이 팀의 중심이 되면 페이스가 느린 하프코트 오펜스가 될 수 밖에 없으며, 본인의 플레이스타일도 상당히 단조로운 편이다.(확률높은 공격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올스타전에서는 다양한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정규시즌이나 플레이오프에선 로우포스트에 자리잡은 뒤 하는 포스트업 공격이 대부분이었다) 90년대에 다른 센터들이 건재했고 인기원톱인 마이클 조던이 있어 오닐은 특이한 캐릭터성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이런 스타일이 지속된 레이커스 시절엔 농구화 판매 부진을 겪기도 했다. 물론 당시 그의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것이지 당대 최고의 인기선수 중 하나이긴 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오닐의 장기집권은 영원할 줄 알았지만 오닐은 발가락 부상 때문에 수술을 받고 기량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사실 기량 하락보다는 코비 브라이언트와의 문제가 장기집권의 결정적 패인이었다. 코비는 2인자 자리에서 만족할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닐과 코비 사이의 권력다툼은 심해져갔다. 사실 둘이 힘을 합치면 [[3-peat]]을 넘어서 4-peat을 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둘에게는 본인이 메인이 되어서 우승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오닐이 골밑을 흔들다가 수비가 견고해지면 코비 쪽으로 가거나 혹은 코비 쪽에서 흔들고, 난사하다 안 되면 오닐 쪽으로 가는 등 당시 레이커스에게 팀 플레이란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코비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인 [[로버트 오리]]나 [[데릭 피셔]] 등은 정상적인 자신들의 포지션보다는 오닐과 코비를 받쳐주기도 바빴다. 오닐 아니면 코비라는 극단적인 전술이니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쓰리핏 첫 번째 시즌에는 그나마 샬럿 호네츠에서 올스타에도 선발되었던 베테랑 포워드 글렌 라이스가 시즌 평균 15득점 정도 올려주면서 오닐, 코비의 뒤를 받쳐줬으나 그 이후엔 오닐, 코비가 도합 55점 정도 합작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데릭 피셔가 간신히 10득점 정도를 올릴 뿐 죄다 한자리수 평득이었다. 원투펀치가 엄청나게 강력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원투펀치와 팀 내 다른 선수들의 공격비중이 차이나는 팀은 당대 우승경쟁 팀 중에선 없었다.] 여튼 오닐과 코비의 레이커스는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점점 전설의 파워 포워드가 되어가는 [[팀 던컨]]과 [[데이비드 로빈슨]]이 마지막 시즌을 맞이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꺾인다. 오프 시즌에 오닐은 우승을 위한 염가계약을 맺으라고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을 꼬드겨 그 유명한 전당포 라인업을 만들지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재계약 협상에서 잡음이 일고, 코비는 덴버에서 성추문에 휘말리며 팀 분위기는 개판이 되었다.[* 이때 코비의 멘트는 더 가관이었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 나도 오닐처럼 돈으로 입막음했어야 하냐는 식으로 말을 해 팬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인터뷰한 것은 아니고 경찰 취조 과정 도중 이렇게 얘기한 것이 세어나가 기사화된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망언이라 훗날 코비가 이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고, 2008년에 코비의 레이커스가 파이널 패배 후 오닐이 파티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할 때 "코비 때문에 내가 이혼당했다"고 디스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휴스턴, 샌안토니오, 미네소타를 격파하며 어찌어찌 파이널에는 진출했지만 [[래리 브라운]] 감독의 디트로이트에게 1-4로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만다. 당연히 여론은 최악이 되었으며 코비와의 파워게임[* 정확히 말하면 오닐과 코비 둘 다 2인자가 되기는 거부했고, 두 선수 모두에게 맥시멈 계약을 주기는 힘들었던 (오닐의 경우 맥시멈을 줄경우 연평균 3000만 달러에 가까웠고, 이때 그는 삭감을 거부했다. 근데 정작 [[마이애미 히트]]에 가니까 약간 삭감된 금액에 계약했다.) 레이커스가 더 젊은 코비를 택한 것이다. 특히 이때 레이커스 프런트는 [[필 잭슨]] 감독과의 갈등도 있었는데, 오닐은 "날 잡으려면 무조건 잭슨 잡아라"라고 공언한 판이라, 잭슨까지 동시에 잡아야될 상황. 결국 잭슨과 오닐을 포기하고 코비 위주로 팀을 재건하려고 한 것이다. 근데 어이없게 둘을 보내고 맞이한 2004-05 시즌이 34승 48패로 폭망[* 11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다.]하자, 잭슨 감독을 연평균 1000만 달러가 넘는 초거대 계약을 안겨주면서 다시 모셔온다.]에서 패배한 오닐은 [[카론 버틀러]], [[라마 오돔]], 브라이언 그랜트와 트레이드되어 마이애미 히트로 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